"모두가 미쳤다고 했지만 10년 만에 세계 1위"... 한국 근대화 이끈 4대 기업인 '구인회·최종건·이병철·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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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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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이후 황폐화 된 한국 근대화를 이끈 4대 기업인 '구인회·최종건·이병철·정주영' 회장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이들은 '모두가 미쳤다고 했지만 10년 만에 세계 1위'를 거머쥔 작은 거인들이다. 

이들의 기업가정신은 사업보국이었다. 기업을 일으켜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단순한 창업 정신을 벗어나 인류와 함께하겠다는 특별한 정신이 지금의 4대 대기업을 만들었다.

전쟁 이후 나라는 많이 힘들었지만 결국 이러한 고통으로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대기업을 만들어냈고 지금의 선진국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들의 기업가정신을 살펴보았다.

 

한국의 근대화 이끈 대표 기업인

삼성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사진=삼성]
삼성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사진=삼성]

거대 기업을 만들어내 한국의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주인공들이 있다. 삼성의 이병철, SK의 최종건, 현대의 정주영, LG의 구인회. 이들 창업회장은 각자의 경영철학을 담아 기업을 키워 나갔는데 이들의 특별한 사업가정신은 ‘사업보국(기업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더 나아가서는 인류에 공헌하고 봉사한다는 의미)’을 품고 있었다. 

일자리를 창출해 임직원, 더 나아가 국민의 배를 채워주고 달러를 벌어와 국가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열정이 경제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한국 기업 창업회장들의 기업가정신은 외국의 창업정신과는 많이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① 삼성 이병철

사진=삼성
사진=삼성

이병철은 36세 때인 1945년 8·15 해방 직후 사업보국의 신념을 다진 것을 회상하며 "이와 같은 각성은 그 후 기업을 일으키고 경영하는 데 있어 일관된 나의 기업관이 되어 왔다. 사회일반의 이해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때로는 돈벌이주의자라는 비난까지 사면서 고난의 길을 가는 출발점이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1983년 2월 반도체사업 진출로 도박을 걸었다. 1984년 한 해에만 1,300억 원의 적자를 보게 되었다. 직원들이 "지금이라도 손을 떼야한다"라고 수차례 건의했으나, 이병철은 "내 눈엔 돈이 보여"라 말하며 꿋꿋이 밀어붙였다.

이후 삼성전자는 1992년 12월 사업 진출 10년 만에 D램 세계 1위에 오르고 미국, 일본의 선두주자들을 차례로 추월하고 지금은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글로벌 기업으로 서게 되었다.

② 현대 정주영

사진=현대
사진=현대

“이봐, 해봤어?”란 말은 정주영 현대 창업회장의 기업가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짓지 않은 그의 신념은 포장도로조차 흔치 않던 한국의 작은 기업 현대자동차를 세계 3위 완성차회사로 도약시키는 데 밑거름이 됐다.

세계 1위 조선 강국을 이루는 초석이 되기도 했다. 1970년 겨울, 공사도 시작하지 않은 조선소 부지를 찍은 항공사진과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선박을 수주한 그의 배짱과 뚝심은 ‘K기업가정신’의 정수로 꼽힌다.

사진=조선일보
사진=조선일보

또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한 일등 공신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전두환 정부와 관계자들이 막대한 자금 때문에 유치를 포기할 때쯤 당시 88 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이자 전경련 회장이던 정주영이 유치의 최전선에 서서 싸웠다.

이때 나고야에서는 비싼 시계를 IOC 위원들에게 나눠주며 유치 홍보를 한 것과 달리 정주영은 IOC 위원들이 머무는 숙소에 꽃바구니만을 돌리면서 홍보를 했다. 이렇게 정주영은 물량보다는 성의로써 친밀해지자며 과감히 밀어붙인 끝에 결국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봐, 해봤어?”란 말을 실천한 정주영 현대 창업회장의 기업가정신을 보여준다. 

③ SK 최종건 

사진=SK
사진=SK

섬유사업이 모태인 SK가 에너지, 통신 분야로 사업을 꾸준히 키우는 과정에서도 ‘한국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최종건 창업회장의 사명감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임직원에게 “우리 세대의 노력이 후대를 풍요롭게 한다”며 “회사 발전이 곧 나라의 발전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8.15 광복 직후 ‘선경치안대’를 조직하고, 다니던 적산회사인 ‘선경직물공장’을 1953년 인수해 창업해 오늘날 SK그룹의 모태기업인 선경직물을 창립하고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뒤 사업영역을 직물 장사에서 무역, 정유화학 등으로 넓히며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쳤다. 

④ LG 구인회

사진=LG
사진=LG

한국의 독특한 기업가정신은 기업 발전 과정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대표적 사례가 LG의 화학사업 진출이다. 구인회 창업회장은 1951년 플라스틱 제품 개발에 나서면서 “남이 미처 안 하는 것을 선택하라, 국민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것부터 시작하라”라고 주문했다.

전쟁통이던 1952년 부산 범일동 공장에서 빗과 비눗갑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무빗만 쓰던 사람들은 합성수지 빗에 열광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합성수지 빗을 보고 한국에서 이런 제품이 나온 것에 감격했다고 한다.

1959년 치약 잡지광고. [사진=바닥™]
1959년 치약 잡지광고. [사진=바닥™]

1955년 럭키치약을 출시했다. 1956년에 창경원에서 열린 산업박람회장에서 럭키치약을 10만 개 무료증정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결국 출시 3년 만에 당시 시장을 석권한 미국제 콜게이트치약을 물리치고 국내 시장을 석권했다.

생필품 구하기가 쉽지 않던 시기에 국민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20년 전 시작된 투자로 최근 자동차 전자장비, 배터리 사업에서 빛을 보고 있는 LG의 뚝심은 구인회 창업회장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한층 더 큰 것, 어려운 것에 새롭게 도전하라”며 끝없는 신사업 도전을 당부했다.

 

[하이뉴스=김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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